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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대담(온 유주 씨/졸업생/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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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면서 문학의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을 품어가고 싶다

총장 대담(온 유주 씨/졸업생/작가)

대학에서 배운 ‘경험을 객관적으로 언어화하는 힘’

다나카 온 유주 씨는 호세이대학 국제문화학부 1기생※이시지요?

온 진로를 생각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호세이대학에 새로운 학부가 생긴다는 데 어떨까?”라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학부가 바로 국제문화학부였는데 스터디 어브로드(SA) 프로그램으로 상하이에 유학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중국어 공부를 하고 싶었던 저는 금세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SA 자기추천 입시라는 특별 입시에 응시하여 무사히 합격했습니다.

다나카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원동력이 된 것 같네요.

온 제 자신은 3살부터 일본에 있었지만 집안에서 부모님은 중국어나 타이완어로 대화를 나누셔서 중국어와 타이완어를 무척 가깝게 느끼며 자랐습니다. 중학생 정도까지는 ‘나는 중국어를 할 수 있다’라고 쭉 믿고 있었는데 막상 읽고 쓰는 단계가 되니 정확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글자와 문법이 약해서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통감하고 16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대학 선택으로 이어져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다나카 실제로 호세이대학에 입학해 보니 어땠습니까?

온 새로 생긴 학부이기도 해서 당시 학부장님이셨던 가와무라 미나토 교수님을 비롯한 교수진이 이 학부를 북돋아 가려고 대단히 의욕적이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미나도 교수님께 일방적으로 지도를 받는다기보다는 학생도 포함한 모두가 ‘국제문화학’이라는 학문을 모색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제 성격에 맞았습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 학문적 용어를 알고 그 덕분에 자신이 지금까지 느껴왔던 ‘소소한 위화감’의 정체는 이런 것이었다고 분석할 수 있게 되어 가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다나카 자신의 체험을 객관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는 그리고 논리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체험이지요.

온 예를 들면 현대사상의 모리무라 오사무 교수님께 시니피앙, 시니피에, 랑그, 파롤 등의 의미를 배웠을 때는 ‘언어와 세계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고 자의적으로 더 자유롭다’는 것에 감동했고 이마이즈미 유미코 교수님께 ‘국민 국가라는 틀 안에서만 생각한다면 간과해 버리는 것이 있다.’라고 배웠을 때도 깜짝 놀랐습니다. 호세이대학에서 몇 년간 배우는 가운데 자신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언어화해 가는 힘이 길러졌다고 생각합니다.

다나카 배움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있지만 언어화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재해석, 재구축하는 바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부지요.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을 단지 외부에서 가져와 배우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국경선은 사실은 애매모호한 것

다나카 대학 졸업 후 호세이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원래 연구에 흥미가 있었습니까?

온 학부 때는 가와무라 교수님이 창작 세미나를 시작하셔서 거기에 참가하여 소설이라고 칭한 것을 이것저것 마구 써 봤습니다. 하지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솔직히 고백하면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연구보다는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일본어를 말하고 있는 걸까?’라든가 ‘부모님은 일본어를 쓰지 않는데 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렇게 유창하게 일본어를 말할 수 있는 걸까?’라는 일련의 자신에게 관련된 문제를 개인적인 맥락에서가 아닌 사회적, 역사적으로 제대로 보고 싶은 생각에 유예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졸업한 후 우선 국제일본학 연구소에서 1년간 배우고 그 후에 국제문화 전공의 석사과정으로 옮겼습니다. 석사 논문은 가와무라 교수님께서 계속 지도해 주셨는데 이 무렵은 쓰카사 오사무 교수님과 리비 히데오 교수님께도 매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리비 교수님은 ‘일본어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셔서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다나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왜입니까?

온 계기는 중국어 공부의 좌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는 중국어를 공부해도 좀처럼 능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원래 기억 속에 정착해 있던 중국어의 정보가 발목을 잡아버려 아무리 해도 새로운 상태에서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0부터 시작한 친구들이 점점 능숙해지는 것을 곁눈질하며 한계를 느꼈습니다. 단지 거기서 저는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만큼 일본어와 자신과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이완 사람이면서 무슨 영문인지 중국어를 잘 못하고 일본어를 잘 하는 나는 어떤 존재일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가 소설이었습니다.

다나카 『타이완 출생 일본어 양육』의 에세이집에서 아쿠타가와상 후보가 된 『중간의 아이들』로 또 다른 가능성을 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세이와 소설과는 어떤 점이 다릅니까?

온 원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을 두 작품 발표한 후에 쓴 것이 에세이집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일까?’, ‘다음은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것을 생각하기 위해 쓴 것이 『대만 출생 일본어 양육』입니다. 그리고 『중간의 아이들』은 제 자신의 언어와 마주하는 방법을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서 저 같은 사람과 누군가가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서 썼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다나카 쓰는 것으로 경험을 보편화한 거군요.

온 보편화라고 하시면 너무 멋진 표현이라서 좀 근지럽지만 어느 쪽이냐 하면 자신의 매우 개인적인 부분을 과감히 드러냄으로써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에 있고 당신도 여기에 있네요.’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저자의 이름을 잊고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과 장난치면서 작품 세계를 즐겨 주기를 바랐습니다.

다나카 『중간의 아이들』에는 3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미묘하게 배경이 다릅니다. 저는 거기에 현실성을 느꼈습니다. 헝가리 출신으로 프랑스어로 소설을 쓴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떠올렸습니다.

온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에세이 『문맹』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다나카 총장님께서 그렇게 느껴 주신 것이 너무 기쁩니다. 언어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하지만 일본열도에서 일본어가 통하는 공간에 태어나 쭉 자라면 점점 언어가 혈육화하여 자신은 일본어와 함께 태어난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착각해 버립니다. 그런 일본 분이 꽤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나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온 언어와 언어를 가르는 국경선은 사실은 애매모호한 것이라고 저는 제 입장에서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 같은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비뚤어졌다고 생각하게 하는 일본의 폐쇄적인 공기에 대해 ‘당신들은 여기에 있어도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뚤어짐이 빛나는 것이라고.

다나카 생각해 보면 모두 어딘가 ‘중간’의 사람이네요.

온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원래 완벽한 일본인이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각각 조금씩 어중간한 사람끼리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나누는 기쁨 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총장 대담(온 유주 씨/졸업생/작가)

다나카 자신의 정체성을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온 이전은 ‘타이완인으로서의 저’를 획득하고 싶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세대의 타이완인과는 경험의 축적이 압도적으로 다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위화감이 생겨 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타이완인 그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으로도 어딘가 위화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중간 지점에서 당황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가 쭉 자신의 과제였습니다. 화교의 역사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일본인의 수기를 읽거나 하면서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다나카 더 복잡한 것은 ‘타이완인은 중국인이지요?’라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소설에도 나와 있었지요.

온 그건 대학 시절 상하이에 유학했을 때 실제로 체험한 것입니다, ‘나는 중국, 타이완, 일본의 나라 중에 어디에도 못 들어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나카 앞으로는 ‘중간의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입니다. 절대로 일본인과 관계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온 저는 제 자신도 모르게 일본인이라는 생각에 발언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일본어가 가장 자신의 감성 수준에 스며들어 있어서 예를 들어 ‘(자신도 포함한) 일본인은 너무 눈치를 보지요’라고 말해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 외국인이 일본인을 비판한다고 받아들여져 일본인을 나쁘게 말하지 말라고 반박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 같은 일본인도 있다는 것을 천천히 침투시켜 가고 싶습니다. 문학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나카 문학이라는 것은 자신 속의 언어와 외부의 언어가 어긋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을 모색하여 성립되어 가는 것이지요.

온 그 전하기 위한 언어는 거기서 기억한 것. 그 언어로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인지. 언어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나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언어를 찾는다. 가장 빠른 길이 책입니다.

온 책은 자신이 아닌 것이 되어 세계를 맛보기 위한 것입니다.

다나카 그렇습니다. 책을 읽고 있을 때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저는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성적이 떨어져 독서를 스스로 금지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또 쓰는 것으로도 언어를 발견해 갈 수 있지요. 자신의 생각을 언어화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온 네, 감사합니다. 저는 어학 습득에 실패한 ‘중간의 아이’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문학을 통해 다양한 사람이 서로 만나는 장소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국제문화학부의 개설 연도…1999년

작가 온 유주(Wen Yuju/温 又柔)

1980년 타이베이 출생. 3살부터 도쿄 재주. 타이완 국적의 일본어 작가라는 입장에서 언어와 정체성을 주제로 한 창작을 함. 중국어와 타이완어를 섞은 자신의 텍스트를 낭독을 통해 표현하는 활동도 중요시하고 있다.
저서는 『복이 오는 집』(슈에이샤), 『단 하나의 내 것이 아닌 이름 Kindle판』(핫빠노 코후, 2015년 에세이집 『타이완 출생 일본어 양육』(하쿠스이샤) 등을 간행. 2017년 4월에 발표한 『중간의 아이들』(슈에이샤)이 제 157회(2017년 상반기) 아쿠타가와상 후보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