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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대담(가네코 마이 씨·졸업생·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 주일 사무소 법무 어소시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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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상상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행동으로 옮기자

총장 대담(가네코 마이 씨·졸업생·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 주일 사무소 법무 어소시에이트)

‘다른 사람’이라고 배제된 존재를 돕고 싶다

다나카 가네코 씨는 유엔 직원으로 오랜 기간 난민 문제에 관여해 오셨는데 난민을 지원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부터 들려주십시오.

가네코 등교거부를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된 왕따 때문에 중학교 2학년부터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어 프리 스쿨에 다녔습니다. 제 경우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것, 쉬는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등으로 다른 친구와 ‘달랐다’는 것에서 왕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도 어떤 의미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구도입니다. 난민 문제도 차원은 전혀 다르지만 종교나 정치적 의견 등의 차이에서 일부 사람이 배제되어 박해를 받는 결과 생기는 것입니다. 힘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으로 배제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나카 자유로운 가정에서 자라셨다고 들었는데.

가네코 ‘다수이기 때문에 옳다고는 할 수 없다’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이 저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인권·사회문제를 다루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랐고 자유롭기로 알려진 개신교 교회에서 만난 외국인이나 장애를 가진 분 등 이른바 ‘소수자’의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지금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다나카 대학은 호세이대학 사회학부에 진학하셨지요?

가네코 통신제 고등학교에 들어가 학원에도 다니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라는 최악의 타이밍에 아버지가 자살을 하시고 그 몇 주 후에는 할아버지 마저도 돌아가셔서 수능시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조문으로 오신 와세다대학의 아버지 제자가 앞으로 시험조차 볼 마음도 없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흐느껴 우는 제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그 제자가 제게 네 의문을 해결하려면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은데 사회학부 중에서 교수진이 가장 우수한 대학이 호세이대학이라고 추천해 주었습니다.

다나카 매우 힘든 경험이었네요.

가네코 아버지는 인격자로 육아에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도 매우 존경을 받으셨는데 ‘○○는 이렇게 존재해야 한다’ 등 일본 사회의 가치관과 자신과의 사이에서 몹시 괴로워하신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다나카 호세이 대학에서의 추억을 들려주십시오.

가네코 소수자의 인권, 아시아의 인구 이동의 문제 등 사회학부의 수업은 자극적이었습니다. 성차별의 시점에서 역사를 생각하는 다나카 교수님의 수업도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차별의 사회 구조나 문화적 민감도, 학문을 어떻게 사회에 직접 도움이 되게 하는지 등 사회학부에서 배운 것은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인생의 전환기에 상담하러 가는 것은 호세이대학 교수님입니다.

또한, 난민을 지원하는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학문적인 연구도 중요하지만 제 성격상 먼저 눈앞에 있는 사람을 직접 도울 수 있는지의 여부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쿄 전력 OL 살인사건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로 15년간 자유를 빼앗겼다 무죄로 풀려난 고빈다 씨의 자원 활동에 참가했습니다.

다나카 실은 저도 고빈다 씨의 지원자였습니다. 판결에는 DNA 감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원 운동을 계속하지 않았더라면 그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겁니다. 최근 외국인이 들어오면 범죄가 일어나기 쉬워진다는 무서운 편견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 신경이 쓰입니다.

가네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양성에 대한 허용량은 늘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반면 ‘난민은 쓰레기다, 나가라’라는 혐오 발언이나 그런 것에 가까운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일찍이 일본은 국제적인 관점에서 봐도 시민 차원의 난민에 대한 자세는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많아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분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인터넷에서 마구 떠들어대기 때문에 사실은 소수라고 생각하지만 다수로 보입니다. 난민 수용은 국제적인 의무이지만 소위 지지파가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간을 들여 이해를 얻기 위해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라는 관점을 갖고 싶다

다나카 학부 때 유학을 하셨지요?

가네코 교환 유학으로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에 1년 다녀왔습니다. 호세이대학 졸업 후는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 진학해서 국제인권법을 공부했습니다. 유엔 직원이나 NGO 직원이 되어 난민을 지원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영국의 석사학위를 따야 했습니다. 훗날 일로 필요한 일본법에 대해서는 행정법·지방자치법 등은 사회정책과학과에서도 배웠지만 헌법이나 민사·형사법 등은 취직한 후 이토 학원에서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다나카 석사 학위를 따고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UNHCR) 주일 사무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유엔 직원은 어떻게 채용되었습니까?

가네코 유엔은 일반적으로 기관별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인 경우 대부분은 외무성의 JPO 파견 후보자 선발 시험을 치고 국제연합 아동기금(UNICEF)과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관 (FAO) 등 희망을 냅니다. 제 경우는 UNHCR주일 사무소에 때마침 공석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응모해서 10년 정도 일한 뒤 레바논과 파키스탄의 UNHCR에서 국제 직원으로 일하고 지금은 주일 사무소에서 휴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나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가네코 주일 사무소 업무에 한해서 말하면 일본의 난민 수용이나 무국적자의 지원에 관한 일을 합니다. 난민 인정은 법무성이 하고 있으므로 입국 심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난민이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거나 여권이 없어도 불법 입국으로 수용하지 말고 도와달라고 부탁하거나 난민 인정을 하는 직원들에게 난민 신청자의 인터뷰와 법적 심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설명하는 연수 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나카 명확한 법률은 있습니까?

가네코 난민 조약이나 무국적자에 관한 조약에는 도와야 할 사람의 정의가 짧게 명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 해석을 사람 중심으로 생각할 것인가 국가 중심으로 생각할 것이인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집니다. 대부분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측의 정부가 박해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 침해의 피해자로 입증하기도 어렵습니다. 무국적자의 대부분도 국적이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해도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법률은 해석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나카 일본은 난민 인정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네코 분명히 인정률이 높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난민 신청자가 수용되고 그 수용이 장기화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시리아 난민을 유학생 등으로 받아들이는 제도를 만드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총장 대담(가네코 마이 씨·졸업생·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 주일 사무소 법무 어소시에이트)

논의하는 것, 행동하는 것의 중요함을 전해 가고 싶다

다나카 현재 국제적으로도 난민 문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가네코 난민을 둘러싼 각국의 대응으로는 예를 들어 수용에 대하여 말하자면 체류자격이 없는 난민 신청자의 신변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풀어주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게 하여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나카 우리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웃사람인 난민에게 익숙해져야겠네요.

가네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난민 인정을 받아도 사회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흑인이라고 몇 번이나 불심 검문을 받거나 아파트를 빌릴 수 없다는 현실도 있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난민의 아이도 많습니다. “키모이(기분 나쁘다)가 뭐야?”라고 울면서 돌아온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조여왔습니다.

다나카 그런 사람들의 상담도 받는군요.

가네코 네. UNHCR 주일 사무소의 직원은 지역사회에도 직접 나가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 후에 NGO 여러분과 상담하여 지원 방법을 모색하거나 홍보에 연결하여 이해를 촉구하거나 합니다. 모국에서는 대학교수를 하던 아버지가 일본에서는 시급 800엔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싶어도 현재 상태로는 어렵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점차 다양한 대학에 협력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장학금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난민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특색을 살려 배우거나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존재는 일본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나카 앞으로 호세이대학에서도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네코 감사합니다. 대학 진학도 감사하지만 지금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의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취업으로 이어지는 기술이나 어학 검정을 받기 위한 지원을 해 주시는 것도 지금의 요구에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나카 각자 사정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능력도 종류도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대응해 가는 구조가 요구되는 것이로군요.

가네코 난민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도 검토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호세이대학의 활동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논의하고 행동하는 것을 가르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실천론’ 등의 수업에서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호세이대학의 다이버시티(다양성) 선언은 ‘외국인’도 ‘성적 소수자’도 모두 포함한 형태로 규정되어 있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나카 선언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국제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에게 메시지를 보내 주시겠습니까?

가네코 일본에서 태어나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노력해도 보상받을 수 없는 또는 노력할 수 있는 환경도 없는 상황에 태어난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국제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해외의 난민 캠프에 가거나 하지 않아도 일본에서도 얼마든지 국제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난민이나 무국적자 어린이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거나 무료로 가정교사를 해 주거나 (http://unhcr.or.jp/ouentai/interview/i0007.html), 수용 중인 난민 신청자·무국적자의 면회 지원 또는 난민이 일하는 레스토랑(http://unhcr.or.jp/ouentai/worldkitchen/wk0005.html)이나 네일 살롱(http://unhcr.or.jp/ouentai/interview/i0003.html)에 가는 등 할 수 있는 것부터 행동으로 옮겨 주었으면 합니다.

다나카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네요.

가네코 저도 경험한 일이지만 일본에서는 학교 식당에서 정치나 난민, 인권 이야기를 하면 친구가 난감해 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없으면 거꾸로 무시를 당합니다. 수업이 끝난 후 모두 피스 워크에 가기도 합니다.

다나카 학생 운동의 역효과일지도 모릅니다. 내부 대립이 폭력화하여 시민운동이 쇠퇴하고 정치 운동이 나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모처럼 배경이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는 환경에 있으니 대학이라는 장소에서 논의하는 것에 익숙해졌으면 합니다. 대학도 제대로 교육해 가고자 합니다.

오늘은 가네코 씨께 소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호세이대학도 난민 지원에 임해가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가네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 인터뷰에서 표명된 의견은 본인의 생각으로 소속된 곳의 견해가 아닙니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 주일 사무소 법무 어소시에이트
가네코 마이(金児真依)

1979년 도쿄 출생. 2002년 호세이대학 사회학부 사회정책과학과 졸업. 재학 중에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UCD)에 1년간 교환 유학하여 여성학·이민학을 배움. 컬럼비아대학 국제공공정책학 대학원에서 국제법·인권법을 배우고 2004년 석사학위를 취득. 유엔 인구기금(UNFPA) 시에라리온 사무소에서 인턴 및 난민 지원 NGO에서의 근무 등을 거쳐 2004년부터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 주일 사무소 법무 어소시에이트로서 일본의 난민 수용과 무국적자를 위해 일함. 레바논(준 제3국 정주관), 파키스탄(법무관) 등에서도 근무. 스페인어 DELE B2(중상급), 행정서사 시험 합격. 공저로 ‘난민·강제이동 연구의 프런티어’(현대인문사), 그 외 무국적자에 대한 논문도 발표. 2016년 현재는 육아를 위해 휴직 중. 육아를 하면서 네덜란드·마스트리히트대학 대학원 박사과정(법학)에서 Ph.D Candidate로 무국적자에 대하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