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입학식 축사

April 3, 2018

신입생 여러분 입학을 축하합니다. 보호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립니다.

호세이대학의 학부 지원자수는 최근 수년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8년도에는 역대 가장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여 3년 연속 지금까지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여러분들께서 입학하신 것입니다.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신입생들을 포함하여 여러분은 다음 세대를 담당할 프론트러너들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호세이대학에서 공부해주시기 바랍니다.

호세이대학은 메이지 13년, 1880년에 ‘도쿄법학사’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3명의 20대 젊은이들이 이 학교를 만든 것입니다. 자유민권운동이 한창일 때 권리 의식에 눈을 뜬 당시의 사람들이 법률 지식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명은 가나마루 마가네 28세, 이토 오사무 25세, 그리고 삿타 마사쿠니 24세입니다. 이치가야 캠퍼스의 ‘소토보리(해자) 교사’ 최상층에 ‘삿타 홀’이라는 다목적 홀이 있습니다. 그 명칭은 3명 중 1명인 가장 젊은 창립자의 이름인 것입니다. 같은 이치가야 캠퍼스 안에는 27층 높이의 건물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보아소나드 타워’라고 합니다. 프랑스인 보아소나드 박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3명의 젊은이가 법학에 대해 배우고 도쿄법학사의 기초가 된 것이 이 보아소나드 박사의 학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호세이대학은 유럽의 학문 및 교육 방법을 외국인 선생님으로부터 도입했을 뿐이었을까요? 저는 이 3명의 젊은이가 왜 학교를 만들었는지 그 당시의 사회는 어떤 분위기이었는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 열쇠가 되는 것은 자유민권운동으로 이어진 ‘결사’라는 것입니다.

호세이대학의 전신인 도쿄법학사가 탄생한 1880년 당시 일본에는 2000개 정도의 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정치와 법률에 대한 의식과 의욕을 갖고 논의하기 위한 결사입니다. 에도시대가 끝나고 정치 및 법률을 담당하던 무사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농민, 상인 그리고 원래 무사였던 사람들이 장벽을 뛰어넘어 논의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신분’이라는 것을 갖지 않는 시민들이 헌법 제정과 국회 개설을 목적으로 하여 활발하게 독서회를 열어 토론을 하거나 연설회를 개최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쓰카이치헌법 등 시민이 만든 헌법안이 여러가지 탄생했습니다. 도쿄도 이쓰카이치시에서는 토론을 목적으로 한 결사가 만들어져 ‘자유를 얻는 지름길은 지식인가 완력인가’라든지 ‘여제가 즉위해도 되는 것인가’ 등을 주제로 토론을 했었다고 합니다. 다마 캠퍼스에 있는 마치다시 아이하라마치는 메이지시대에는 아이하라촌이었는데 백 명 가까운 청년들이 밤낮으로 토론을 했습니다. 다마 지역은 자유민권운동이 유달리 번창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일본 구석구석에 결사가 있었습니다. 오카야마현에는 개구리가 우는 떼라고 적는 ‘蛙鳴群(아메이군)’이라는 이름의 결사가 있었습니다. 본인들은 논에서 울고 있는 개구리 같은 존재에 불구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한다라는 의지를 나타낸 이름입니다.

1889년에 도쿄법학사는 ‘화불(和仏)법률학교’로 발전했습니다. 그 초대 교장은 미쓰쿠리 린쇼라는 분이었습니다. 19세에 현재의 외무성에 해당하는 외국봉행의 번역 업무의 리더가 되어 21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이윽고 ‘화불법률학교’의 교장이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한 최초의 역사서를 썼습니다. 이 미쓰쿠리 린쇼와 히토쓰바시대학을 창설한 모리 아리노리 및 게이오기주쿠를 만든 후쿠자와 유키치 등 10명이 결성한 결사가 ‘메이로쿠샤(明六社)’입니다. ‘메이로쿠잡지’를 발간해 당시의 지식을 선도했던 결사였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논의하고 들끓었던, 그런 시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결사에서는 에도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활발하게 토론을 하곤 했었는데요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했을까요? 이는 에도시대의 교육기관에서는 이미 ‘회독(会読)’이라고하는 토론을 중심으로 하는 학습 방법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독은 10명 정도가 하나의 그룹이 되어 학생들이 순서대로 교재의 일정 부분에 대해 강의를 하는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그 강의 내용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하며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토론이 팽팽하게 대립되거나 혼란스러워지거나 하게 되면 개입하여 판정을 내립니다.

에도시대의 학습 방법은 우선 소독(素読, 글 따위를 서투르게 떠듬떠듬 읽음)이라고 하여 소리를 내서 읽고 외웁니다. 소리로 인해 몸 안에 기억하게 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그렇게    체화된 말의 의미를 강의로 듣고 깊이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회독’이 이루어집니다. 일본인은 에도시대에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와 비교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표현하여 토론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국회를 개설하여 헌법을 만들고 법률에 의해 시민사회를 구축해 나가던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며 논쟁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도쿄법학사도 현실 사회를 바꿔 나가기 위해 논의를 하는 결사였던 것이 아닌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대의 창립자들은 분명 스스로 배우고 생각하고 시민들과 끝까지 논의하기 위해 모였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 창립 당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2004년에 인구의 절정기를 맞이한 일본은 인구 감소라는 급격한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다. 2040년 경에는 인공지능이 초래하는 싱귤래리티라고 불리는 커다란 변화가 일본과 세계에 도래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일자리는 다른 일자리로 잇따라 대체될 것입니다. 메이지유신과도 필적할 만한 변화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는 젊은이들이 호세이대학을 만들었던 것처럼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앞날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여러분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프론트러너가 될 기회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회독’이라는 토론을 통한 학습 방법을 계승했다고 추측이 되는 호세이대학은 커다란 변화를 향해 ‘실천적 지혜에 대한 배움’이라는 방법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들고 계신 자료에 대학헌장 전문이 나와있습니다. 이 대학헌장에는 ‘자유롭게 살아갈 실천적 지혜’라는 제목을 내걸고 이를 본교의 교육연구상의 ‘약속’으로 정했습니다. 자유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현장과 결부된 지성의 육성만이 변화의 시대에 있어서 본교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살아갈 실천적 지혜’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란 기존의 권위와 조직 및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자신을 규제하며 사는 것입니다. 실천적 지혜란 단순히 실제로 도움이 되는 지식이라는 의미가 아닌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을 향해 각각의 현장에서 발휘하는 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도쿄법학사은 법률을 강의하는 ‘강법국’과 변호사 사무소로서의 측면을 갖는 ‘대언(代言)국’으로 성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배우는 자가 변호사 업무를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 사회의 현장에서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체험 또한 창립 당시부터 중시되어 왔던 것입니다. 헌장은 ‘과제 해결로 이어지는 실천적 지혜’야말로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전세계 어디에서든 살아갈 수 있는 힘’, ‘지속가능한 사회 구축’이라는 호세이대학이 목표로 하는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살아갈 수 있는 힘’이란 어떤 힘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나가야 할 사회에서는 그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세계 전체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다이버시티 즉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호세이대학의 ‘다이버시티선언’에서는 ‘성별, 연령, 국적, 인종, 민족, 문화, 종교, 장애, 성적 소수자인 점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극복하고 이러한 상이함을 개성으로서 존중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자세인 것입니다.

호세이대학은 새로운 시대에 계속해서 배우는 방법에 대해 여러분들이 익힐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사람은 한번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 안에서 마음껏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초가 되는 힘을 기르는 중요한 몇 년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다시한번 입학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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